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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이택언 찻잔

2019. 4. 9. 23:34

 

달빛이 공중을 거닐고 있었다.

이택언은 작은 다락방의 벽에 기대, 쉴 새 없이 작은 유리조각을 세심히 골라냈다.

어떤 조각은 검붉은 색이 물들어 있었고, 방금 전 여자가 흘린 눈물도 섞여있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유리 조각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크기의 깨진 유리조각을 주워 인내심 있게 유리잔 밑에 하나하나 맞춰보았다.

틀려도 짜증 내지 않았다.

마치 연약하고 깨져버린 마음을 조심스럽게 다시 맞추는 것처럼.

 

이택언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가락에 떨어진 눈물의 느낌이 너무 선명했다.

문득 그녀와 다시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이택언이 후회할만한 계획을 세울 거라고 얘기하면서 자신 있게 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그를 초대했고, 그가 만든 카라멜 푸딩을 맛있게 먹었다.

 

그때 그녀의 표정은 다채로웠다.

평소에는 항상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고 눈에서는 빛이 났다.

가끔은 화가 난 복어 같아서 더 골려주고 싶기도 했다.

영화제 자선의 밤에 참가했을 때는 감동해서 펑펑 울었고, Souvenir가 오픈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환호하며 뛸 듯이 기뻐했다.

 

마치 모든 유리 조각에 그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웃는 모습, 애교 부리는 모습, 억울해하는 모습, 억지 부리는 모습, 그리고 눈물 흘리는 모습.

예전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강한 척 눈물을 참는 지금의 모습도.

 

몽롱한 아침 햇살이 지평선까지 올라왔다.

손에 든 유리잔은 이미 반쯤 고쳐졌지만, 그의 손은 자잘한 상처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택언은 가볍게 고개를 돌려 저 먼 곳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10년 후 마주치게 될 비슷한 장면이 떠올랐는지, 그의 눈동자에 매서운 한기가 스쳤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여 컵의 남은 부분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한 유리잔이 그의 손안에 놓여있었다.

비록 접착제 흔적이 울퉁불퉁했지만, 부서진 햇살이 그의 올라간 입꼬리를 비추었다.

그는 서서히 어깨를 늘어뜨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반드시 예전의 당신을 되찾아 오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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