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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허묵 꿈나라 밖

2019. 4. 9. 23:04

 

어두운 골목에서 허묵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아직 안전하게 품에 안겨있었다.

팔에 힘을 주려고 했으나, 어깨가 마비된 상태라 한참 지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골목 저 끝에 주차된 차의 불빛이 반짝였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머릿속 기억은 마치 물결치는 호수처럼, 몽롱하고 몽환적이었다.

그녀의 옷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그는 한참을 살펴본 후 아무 상처가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그녀를 품에 안았다.

 

허묵은 살짝 몸을 움직여보며, 떠오른 기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녀를 안고 일어나 주차된 차를 향해 걸어갔다.

 

창 밖에 보슬비가 내리며 톡톡 빗방울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불안정하게 잠들어 있었다.

허묵은 손을 뻗어 그녀의 찌푸려진 미간을 어루만졌다.

그의 눈동자는 밤의 그림자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조용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시간도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한참이 흐른 후, 그는 자리를 떠났다.

마치 그곳에 나타난 적도 없는 것처럼.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허묵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가슴 왼쪽이 서서히 뜨거워졌다.

복도 끝까지 걸어간 허묵은 몇번의 신분 인증 끝에 더욱 어두운 실험실에 들어갔다.

그는 익숙한 듯 의자에 앉아 실험 기구를 머리에 썼다.

눈앞의 화면에 숫자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무형의 물질은 곧 형체가 있는 파형으로 바뀌어지며, 그렇게 남겨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허묵의 머리에 땀이 흘렀다.

그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머리에 쓴 기기를 벗었다.

그리고 붕대를 찾아 셔츠를 피로 적신 상처를 다시 한 번 감았다.

허묵은 프린트된 서류를 재빨리 훑고는, 그 기록을 'Memory'라고 적힌 서류함에 넣었다.

 

차가운 전자불빛이 그의 눈동자에 더욱 매서운 빛을 감돌게 했다.

그러다 머릿속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쳤는지 잠깐 눈빛이 부드러워졌으나, 한순간뿐이었다.

 

실험실을 나온 허묵은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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