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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허묵 전야

2019. 4. 9. 22:52

 

서류철의 1908년 백악관 폭발 사건 보고서를 계속해서 뒤져보던 허묵은,

그윽한 달빛 아래에서 서류를 든 채 창가에 기댔다.

그는 시선을 '폭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라는 기록에 고정한 채, 손가락으로는 박자를 맞춰 책상을 두드렸다.

 

언제부터인지 사건은 그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며칠 전, 허묵은 다른 실험 단체가 발표한 이번 독감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받아보았다.

익숙한 이론에 셀 수 없이 많은 부분까지 수정되어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그가 원하는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다른 길은 다 막히고, 오직 이 길만 남아있었다...

머릿속에서 갑자기 뭔가 번뜩했다.

허묵은 상자 속 고양이와 시약의 성공률, 그리고 그 말을 떠올렸다......

 

Return-to-zero 계획이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모든 바이러스가 폭발했습니다.

 

그 확신에 찬 말투를 생각하자 허묵의 표정은 점점 차가워졌다.

그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눈을 깜박였다.

창밖의 구름이 천천히 이동하며 어둠 속으로 그림자를 삼켰고, 모퉁이에는 처량한 달빛만 남아있었다.

 

달력을 보니, 내일이 바로 발표회가 있는 날이다.

모두가 이 결정을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이 발표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의심했다. 하지만...

 

때로는 도박을 해 볼 만한 가치도 있는 법이다.

 

허묵은 책상 위에 올려진 발표회 초대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익숙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미소, 그녀의 눈물, 그녀의 중얼거림, 그녀의 체온.

 

그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머릿속의 장면들이 퇴색됐을 뿐이었다.

 

허묵은 손으로 부자연스럽게 오른쪽 눈을 만져보았다.

완벽했다.

 

...내일 발표회에서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 때가 되어, 삶의 유일한 색채를 잃게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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